이젠 ‘시작을 강조할 때다.
기록으로 전하는 김복진의 생전 작품 50여 점 중 41점이 출옥 후 6년 동안 제작됐으며.인생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정력과 박력을 갖은 예술혼을 추구했으니.
사람은 역사 속에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김복진.국립현대미술관의 협력에 힘입어 석고상으로 복원되었다.김복진은 조각가이기에 앞서 운동가이자 이론가였다.
카프)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.[사진 국립현대미술관] 기계와 컴퓨터가 추출한 데이터보다 중요한 것은 세부에 대한 마무리였다.
‘소년이 등신대가 아닌 ‘4척의 크기였다는 기록을 토대로 조각상은 최종적으로 120㎝로 축소 제작되었으며.
『김복진 연구』 (윤범모) 등 후대의 연구서를 분석하여 당시의 제작 방법과 태도에 접근했다.우리말에도 1월을 ‘해오름 달이라 일컫는다.
그러나 1월 동장군엔 장사 없다.(‘분황사천수대비 맹아득안(芬皇寺千手大悲 盲兒得眼) 중) 긴 한숨에 어깨까지 내려갔다.
오래전 새해를 맞은 도연명은 ‘새해가 열리고 닷새가 지났으니.초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자니 그러기엔 세월이 너무 빠르다.